2012.09.03 우리동네 괭이들


여자친구와 데이트 후 집으로 돌아가던 길. 왠지 평소와는 다르게 돌아서 가는 길을 가자고 주장한 여자친구 덕분에 이 사랑스러운 녀석들을 만날 수 있었다. 

길을 걷다 땅바닥에서 뭔가 부선스러운 기척이 느껴져서 보니 고양이 식구가... 위쪽의 덩치 큰 녀석이 엄마 고양이인 듯 했다. 눈빛만 봐도 엄마라는 건 너무 명확하니까. 작은 얼굴에 유달리 도드라져 보이는 큰 귀가 아니라도, 아기 고양이들을 호기심 가득한 눈빛 덕분에 바로 티가 났을 것이다. 

고양이 가족은 참치집 앞에 모여 앉아서 애옹애옹 거리며 노닐고 있었다. 사람이 제법 많이 다니는 길인데도 전혀 거리낌이 없었다. 그럴만도 한 것이, 저 엄마 고양이는 이수역 터줏대감이라고 불러도 과언이 아닐만한 녀석이다. 특유의 김흥국 콧수염과 꺾인 꼬리 때문에 눈에 확 띄는데, 이수역에는 넘쳐나는게 고깃집과 횟집이라, 맘씨 좋은 사람 몇만 마주쳐도 길고양이 치고는 호사롭게 살 수 있다. 덕분에 요 콧수염 엄마 고양이는 굉장히 사람에게 친근하게 구는 편이다. 

  엄마보다는 아빠를 쏙 빼닮은 줄무늬 아기고양이가 엄마 고양이와 함께 뭔가를 바라보고 있었다. 내가 아주 조심조심 다가가긴 했지만, 정말 가까운 거리였는데도 경계심을 보이기는 커녕 그 와중에도 치고 밖고 싸우고 있는 뒷쪽의 두마리. 확실히 엄마가 사람들과 친해서인지 아기들도 사람을 전혀 두려워하지 않는 기색이었다. 사진기를 들고 있던 내게는 참 감사스러운 일.

아 물론 아깽이들은 몰라도 엄마 고양이는 은근 경계의 눈빛을 보내기는 한다. (내게서 육식인간의 냄새가 나서 그런건 아닐까!!)

그래도 참 다행스럽다 싶은 점은 이 동네에서 몇년간 살면서 고양이 괴롭히는 인간은 본적이 없다는 것이다. 그 증거로 이 동네 고양이들은 대체로 토실토실하고;경계심도 적은 경우가 많다.  길고양이들이 여기저기서 잘 얻어먹고 다녀서인지 쓰레기 봉투 헤집어 놓은 꼴도 별로 보지 못했다. 고양이가 인간들 틈바구니에서 구걸이나 하고 다니는 모습이 그닥 바람직한 것은 아닐지 몰라도, 나는 길가다 이런 귀요미들을 발견할 때 기분이 좋다. 인간만의 도시라는 건 얼마나 삭막하고 지루한가. 


  그리고 이 꼬맹이들이 차가운 도시에서도 무사하게 잘 살아남기를 기원한다.